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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북。BoOk

최동훈 감독의 살인자의 섬 리뷰 - 더할 나위없는 서스펜스 소설

by 호박달빛 2010. 3. 28.

화를 들고 프랑스 코냑 영화제에 갔을 때 일이다. 그곳은 지역 경찰관들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스릴러 영화제인데 초대손님으로 데니스 루헤인이 왔었다. 괜히 식사 때마다 만나게 된 프랑스 추리소설잡지 기자가 한마디 했다. '데니스 루헤인을 좋아하느냐?' [미스틱 리버]가 영화화됐다는데 아직 못 봤다.' '이번에 나온 그의 소설을 읽어봐라. 그게 그의 대표작이 될 것이다.'

영어 원서 : Shutter Island

멀리 떨어진 데니스 루헤인을 힐끗 바라봤다. 심사위원장인 조엘 슈마허와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가볍게 손을 잡고 웃는다. 음…… 조엘 슈마허가 그의 대표작을 영화로 찍겠구만.
시간이 흘러, 마틴 스콜세즈가 이 소설을 영화화했다고 한다.
마틴 스콜세즈의 모든 것이 궁금하지만 특히 이 소설에 대해선 궁금함을 넘어 부럽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서스펜스 작가들은 인생 내내 빛나는 작품을 쓰지 못한다. 불행한 현실이다.
좀 더 운이 좋은 작가라면 한두 편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이건 부러운 현실이다. 다만 소수의 능력 있고 위대한 작가들의 경우에만 걸작을 연달아 만들어낸다. 이럴 땐 진정 가능한지 의문만 들 따름이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그랬고 존 르 카레, 그레이엄 그린, 스티븐 킹, 제임스 엘로이가 그랬고 데니스 루헤인 역시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이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랫동안 나는 그 섬을 본적이 없다……. 나는 테디(대니얼스 보안관)를 생각했다. 나는 테디와 세상을 떠난 그의 가엾은 아내 돌로레스 샤날을 생각했다. 공포스러운 존재 레이첼 솔란도와 앤드루 레이디스가 우리 모두를 얼마나 망가뜨렸는지도……" 바로 레스터 시헨 박사의 문장이다. 이 소설의 모든 비밀이 여기에 담겨 있다.

1954년, 대니얼스 보안관은 동행인 처크 보안관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정신병원에 들어선다. 레이첼 솔란도라는 여자환자가 실종됐다는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다. 레이첼의 주치의 레스터 시헨 박사는 육지에 나가 있어 만나볼 수 없는 대신 콜리 박사가 그들을 맞이한다. 때마침 허리케인이 해안을 강타해 모든 연락은 두절되고 섬 안의 정신병원에서는 알 수 없는 진실이 숨죽인 모양으로 은폐돼 있다. 두 보안관은 살아서 이 섬을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를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다. 환자들은 인터뷰하는 와중에 어느 여자환자가 대니얼스의 수첩에 몰래 글을 적어둔다. 한 단어다. "도망가".

병원관리자들은 실종됐던 환자 레이첼 솔란도를 해안에서 찾았다며 이제 임무가 끝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니얼스 보안관은 아직 찾을 게 더 남아 있다. 그의 부인 돌로레스 샤날을 죽인 범죄자 앤드루 레이디스가 이곳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폭하고 폭력적인 정신병을 가진 수감자만 모아놓은 C동 어느 구석진 방에 그가 있을 것이다. 이제 대니얼스 보안관은 그를 찾아 아내의 복수를 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다. 어쩌면 바로 그 일 때문에 이곳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섬을 수색하던 와중에 동행인 처크 보안관이 실종된다. 그런데 정신병원 관리자들은 대니얼스 보안관이 애초부터 이 섬엔 혼자서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제 대니얼스 보안관은 뭔가에 속지 않아야 하면서 뭔가를 찾아야 한다. 자! 이제 그는 어떻게 될 것인가?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면서 결말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실재로 이 소설의 결말은 대단히 설득력 있으면서 충격적이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긴장을 유발시키고 이를 유지한다. 서스펜스 소설로서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서스펜스 말고 찾아야 할 게 더 있다. 끊임없이 대니얼스 보안관을 괴롭히는 편두통과 바라보기엔 눈이 너무 밝아서 아플 정도인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절의 짧은 환희가 그렇다.

허리케인이 몰아치는 섬 벼랑 위에서 죽을 힘을 다해 뭔가를 찾으려는 대니얼스 보안관의 나부끼는 옷자락과 헝클어진 머릿결 너머로 숨어버린 그의 슬픈 영혼이 그렇고, 아내의 보라색 원피스에 뚫린 붉은 구멍 속에서 외로움이 쿨럭거리며 쏟아져 나올 때 그렇다.

데니스 루헤인은 언제나 그래왔다. 그의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추적자이면서 운명의 희생자이다.
어느 서스펜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추적당하고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희생자는 아니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사건에 놓였을 때, 현실이 덫이 되었을 때, 일상생활이 뒤집혀질 때에야 비로소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진실을 찾아 나서지만 실패하기 때문에, 자신이 찾은 진실이 진정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 밖의 여러 이유 때문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더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그는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스릴러가 슬퍼지면 독자들은 빠져 나오기 어렵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스릴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

 
주차 요원 등을 전전하며 틈틈이 작품을 집필하여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를 등장시킨 다섯 편의 범죄 소설로 데뷔 후,
셰이머스 상을 수상하며 인기를 끌었다. 2001년 발표한 [미스틱 리버]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아카데미 남우 주조연상을 휩쓸었다.

2003년 발표한 [살인자들의 섬]이 또 다시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로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신작 [Given Day]를 출간하였으며, 이 또한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 감독이 매가폰을 맡으며 할리우드가 최근 가장 주목하는 작가로도 꼽힌다.


오랫동안 나는 그 섬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것 같아. 어쨌든 여기는 흔히 보는 저능아들은 없어. 보도블록 사이에 난 틈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나 잠을 너무 많이 자는 사람도 없고. 내가 서류에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여기 사람들은 전부 진짜로 미쳤어."
(41쪽)

"경안와전두엽절제술인데, 그 수술이 아주 재미있어, 처크. 우선 사람한테 전기 충격을 준 다음에 눈을 통해서, 잘 들어, 얼음송곳을 안으로 넣는 거야. 농담하는 게 아냐. 마취도 안 하고 송곳으로 여기저기를 찔러보다가 뇌에서 신경섬유 몇 개를 잘라내는 거야. 그게 끝이라고. 식은 죽 먹기지."
(215쪽)

"여길 떠나기 전에 나한테서 의사들 이름을 받아가세요. 알겠습니까? 앞으로 5년 후에도 당신이 아직 이 세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안관."
(265쪽)

"하지만 내가 당신을 찾아내서 여기서 데리고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이 그의 관자놀이를 스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한 얘기를 한 마디도 제대로 안 들었군요?" "들었습니다." "당신은 여길 못 나가요. 당신도 이제는 우리랑 같은 처지라고요."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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