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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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광대한 영토를 사철 꽁꽁 얼게 만드는 ‘히스테릭 얼음공주’ 투란도트는 처음으로 한 문제를 맞춘 남자를 보고 너무나 놀라고 초조해져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살벌한 독신 여왕 대신 평범한 남자의 통치를 받고 싶은 보수적인 베이징 시민들은 한 문제를 푼 칼라프에게 환호합니다.
‘시작이 반이다. 수수께끼 하나를 풀 수 있다면 세 문제를 못 풀 이유가 없다.’ 다들 이런 희망을 품고 다음 퀴즈를 기다리지요.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다.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 목소리는 희미하지만 그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방인 왕자의 입에서는 두 번째 정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피!(Il sangue!)"
대체 어느 나라 백성인지, 군중 가운데 그 누구도 자기 나라 공주인 투란도트를 응원하지 않습니다.
모두 이방인 왕자에게만 미친 듯이 열광합니다. 이제 투란도트는 이 건방진 이방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려고 계단 맨 아래까지 내려와 그를 정면으로 쏘아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던집니다.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러나 그대가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갑게 어는 얼음... 그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되지. 그건 대체 뭘까?” 각본상 칼라프 왕자는 꽤 오래 고민합니다.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베이징 시민들은 칼라프에게 힘을 내라고 외치고, 마침내 칼라프는 세 번째 정답을 말합니다.
“투란도트!(Turandot!)"
위의 수수께끼 장면은 [투란도트]에서 극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주인공 남녀가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하며 고도의심리전을 펼치는 2막의 이 장면에 앞서, 투란도트는 ‘이 황궁에서 In questa reggia’라는 첫 아리아로 자신이 왜 남자들을그토록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밝힙니다.
“누구도 꺾지 못할 긍지와 확신으로 엄격하게 나라를 다스렸던” 자신의 할머니 로우링 공주가 타타르 인의 침략 때 칼라프같은 이방인 사내에게 겁탈 당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 할머니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자신은 청혼자들을 모두 죽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음악의 멜로디와 중국적 분위기를 살려낸 오페라
이 ‘투란도트’ 소재를 처음 작품화한 사람은 18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카를로 고치였습니다.
그의 [투란도트]는 이탈리아의 전통 희극 코메디아 델 아르테 형식을 따른 작품으로, 왕자는 안하무인이고 공주는 제멋대로인데다 잔인하기까지 한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쉴러가 개작한 [투란도트](1801)에서는 쉴러의 미적 이상(理想)에 따라 왕자는 진지한 사랑으로 기꺼이 공주에게 승복하고,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사랑을 거부하던 공주가 차츰 사랑에 눈 떠가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쉴러 작품의 이탈리아어 번역판을 읽고 감동 받은 푸치니는 대본작가들과 함께 이 작품을 다시 각색해 오페라 [투란도트]를 만들었습니다. 1920년 런던 여행 때 알게 된 중국 음악들을 참고로 푸치니는 이 작품에서 중국 멜로디를 일곱 번 사용했고, 중국제 뮤직박스(오르골)로 ‘황제찬가’를 듣고 그 멜로디도 작품에 유용하게 썼답니다. 5음계 및 공(Gong), 탐탐, 종, 실로폰 등의 악기를 이용해 중국적 분위기를 살려낸 것도 작품의 인기에 일조했습니다.
수수께끼를 내는 투란도트 공주와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칼라프 왕자
투란도트는 [라 보엠]의 미미나 토스카, 나비부인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오페라에서는 투란도트 대신 또 하나의 여주인공이 푸치니의 전형인 ‘희생적 여인상’을 보여줍니다. 나라를 잃고 구걸을 하며 떠도는 눈먼 왕 티무르를 극진히 돌보는 노예 류(Liu)입니다. 베이징의 군중 속에서 티무르의 아들인 칼라프 왕자와 마주쳤을 때 류는 “어느날 궁전에서 왕자님의 단 한 번 미소에 반한” 자신의 절절한 사랑을 고백합니다(‘왕자님, 들어보세요 Signore, ascolta’). 류는 사랑을 모르는 냉혹한 투란도트에게 ‘보상을 원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려고 나중에는 목숨까지 바칩니다.
이런 비극은 수수께끼를 통과한 칼라프가 만용을 부려 투란도트에게 자기 이름을 맞춰보라는 문제를 내놓고 그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호기롭게 부르면서 시작됩니다. 어떻게든 결혼을 피하려는 투란도트는 필사적으로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류와 티무르를 고문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류가 왕자를 위해 자결한 것입니다.
푸치니는 [투란도트]에서 의욕적으로 새로운 음악 형식에 도전했지만, 후두암 수술 후유증으로 류가 죽는 부분까지만 작곡을 한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류의 희생을 딛고 칼라프가 마침내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게 되는 해피엔딩은 푸치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감독 하에 푸치니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했습니다.
- 글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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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0.02.15 -
이미지 TOPIC / corbis
[출처 :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036]
[용산아트홀]
6호선 녹사평역 3번 출구 → 2분여 직진 첫번째 횡단보도 건넘 → 스킨푸드 좌측으로 두고 아래로 쭉 직진
(이태원 방향 말고 예술의전당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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